현장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어느 공장에서 라인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설비를 두 대 추가 도입했습니다. 작업자는 두 명 줄었고, 처음 두 달은 생산량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세 달째부터 불량률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고, 다섯 달째에는 라인이 하루에 두 번 이상 멈추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아니었습니다. 앞 공정에서 넘어오는 소재가 일정하지 않았고, 그 불규칙성을 사람이 눈으로 걸러내고 있었는데 그 역할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기 전에 공정을 분석할 때, 많은 기업이 사이클 타임과 인원 배치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공정 지도를 그려보면 대부분의 시간이 작업이 아닌 대기에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 공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자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간. 이 시간들이 라인 전체의 속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비를 도입해서 한 스테이션의 속도를 두 배로 높여도, 그 앞뒤 공정이 여전히 같은 속도라면 전체 산출량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정 구간에 재공이 쌓이거나, 빠른 공정이 느린 공정을 기다리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구매 담당자가 먼저 물어야 할 것
설비 사양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공정에서 제품이 가장 오래 멈춰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 멈춤의 원인은 사람인가, 장비인가, 아니면 정보인가.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도 실제로 개선되는 것이 없거나 문제가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뿐입니다.
공급업체는 자신의 장비가 시간당 몇 개를 처리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최적 조건에서의 이론값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그 속도를 유지하려면 앞뒤 공정이 그 속도에 맞게 정렬되어 있어야 합니다.
구매자가 놓치기 쉬운 판단 기준
설비 도입을 검토할 때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장비의 성능 스펙을 비교하는 것과 현장의 흐름을 분석하는 것을 같은 작업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는 전혀 다릅니다.
대기시간의 원인을 구분하라
대기에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장비의 처리 속도가 느린 경우, 앞 공정에서 넘어오는 소재나 반제품이 불규칙한 경우, 그리고 검사나 승인 같은 정보 흐름이 실물 흐름보다 느린 경우. 자동화는 첫 번째 원인에만 직접 작용합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설비가 아닌 공정 설계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대기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 두 번째나 세 번째인 경우, 설비를 도입해도 대기시간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병목은 이동한다
한 공정을 자동화해서 속도를 높이면, 병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면, 설비 도입 이후에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새로운 병목이 생기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설비 투자가 필요해지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설비 도입 전에 전체 공정에서 각 스테이션의 사이클 타임을 실측해 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양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측정한 숫자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던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라
자동화로 대체하려는 작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비를 도입하면, 사람이 암묵적으로 담당하던 판단 기능이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작업자가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소재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이상이 있을 때 라인을 멈추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었다면, 그 기능이 설비에 포함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설비보다 먼저 봐야 할 것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진 뒤에 공정 분석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서가 반대입니다. 공정 안에서 실제로 시간이 낭비되는 지점을 먼저 찾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한 뒤에, 그 원인에 맞는 해결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자동화 설비가 그 해결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도입 후에 기대했던 효과가 나오지 않아 원인을 추적해 보면, 설비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공정 사이의 버퍼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투입 소재의 편차가 장비의 허용 범위를 초과하거나, 앞뒤 공정의 속도 차이가 예상보다 컸거나. 이런 요인들은 장비 사양서를 아무리 꼼꼼히 검토해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흐름을 측정해 봐야만 보입니다.
설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면, 지금 현장에서 제품이 멈춰 있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 측정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숫자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설비를 검토하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검토하는 것은 판단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구매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은 어떤 장비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 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장비를 도입해도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동화는 흐름을 만드는 도구입니다. 흐름이 어디서 막히는지 알고 있을 때, 그 도구는 제 역할을 합니다.
















